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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래된 사진기, Olympus OM-1

Tatow 2016. 3. 10. 12:19



내게는 아주 특별한 사진기가 한 대 있다.

아주 오~래된 구식 수동 필름 사진기

한 때 업계를 양분했던, 지금도 일반에 가장 많이 알려진 두 브랜드 캐논, 니콘이 아니라...

올림푸스의 역작, 1973년생 OM-1이다.


아버지께서 오래전에, 아주 아주 오래전에 지르셨던, 바디와 함께 두가지 렌즈를 포함하여 거의 집 한 채 값이 들었던 우리집 고가품 1호였던 사진기다.


아버지는 해군에서 통신관으로 근무하시다가 전역하신 후 일본의 해운 회사에 취업하셔서 유조선 통신국장으로 평생을 바다에서 보내신 분이셨다.

무대는 드넓은 망망대해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업공간은 고시원 방 한칸만한 좁디좁은 통신실이었는데 그런 아버지의 취미생활은 음반 수집과 사진이었다.

휴가 때 집에 오시면 항상 수많은 외국으로 다니시면서 수집한 클래식 음반을 들으시거나 사진기로 가족들을 촬영하시곤 했던 것이다.


내 나이 스무살 되던 해 바로 이 사진기를 아버지께서 물려주셨는데 그땐 그게 그렇게나 불만이었다.

캐논이나 니콘처럼 남들도 많이 가지고 다니는 유명(!?)브랜드도 아니고 또 당시 신기하고 멋들어진 자동기능이 있는 카메라도 아니고 구식 수동 사진기라니...;;;

처음 이 사진기를 어깨에 메고 거리로 나섰는데 뒤에서 누군가 수군대던 한 마디...


 - 와, 저건 되게 오래된거네..!? 요즘 누가 저런걸로 사진을 찍나~!?


그 한 마디 말이 귀에 들린 후,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한동안 이 사진기를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나중에,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이 사진기의 진가를 알고나서 다시 손에 들기 시작했다.

1973년도, 일안반사식(SLR : Single Lens Reflex) 렌즈 교환 카메라 역사의 분수령이 된, 기념비적인 걸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연후에야 아버지께 진정한 감사의 마음과 함께 또한 그동안 홀대했었던 이 사진기에 대해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었다.


디자인은 위 사진처럼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전형적인 SLR바디의 모습이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SLR과 DSLR 카메라가 휴대하기 쉽고 가볍게 소형화, 경량화 되기 시작한 분수령이 된 사진기가 바로 이 Olympus OM-1인 것이다.

워낙 소형화된 크기에 내부 구조가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어 지난 2000년 이후로 올림푸스 코리아는 이 기기에 대해 더이상 분해, 수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 선언하였고 현재 이 사진기를 분해, 수리 할 수 있는 곳은 현재 우리 나라에는 서울에 딱 두 군데 정도 남은걸로 알고 있다.

어쩌면 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알아도 굳이 피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 사진기라는 공공연한 비밀(!?)도 있다.


그러나, 내게는 여전히 쌩쌩한 현역이자 주력 사진기다.

사용하는 렌즈는 G.Zuiko 50mm f1.4

세상에 나온지 40년도 넘은 올드 렌즈지만 현재 내게 있는 그 어떤 렌즈보다 선예도가 월등히 뛰어나다.


끝으로 아래는 바로 이 사진기와 렌즈로 촬영했던 사진들로 그 과거의 한 순간이 현재의 추억으로 다시금 응답하는 힘이다.



* Olympus OM-1 + G.Zuiko 50mm f1.4 + Fujifilm Velvia 100 / 2010년 8월, 배우 최준영씨, 경기도 의왕

* 원색의 발색이 남다른 벨비아 필름으로 촬영, 별다른 후보정을 할 수 없는 관계로 1/3스탑 정도 노출오버로 모델의 얼굴이 하얗게 나오도록 촬영



* Olympus OM-1 + G.Zuiko 50mm f1.4 + Fujifilm Superia 200 / 2011년 5월, 모델 강가연씨, 국립중앙박물관

* 디지털 시대에 와서도 초록의 발색만큼은 또렷하게 발군인 후지필름의 특성이 비오는 날 촬영하여 상큼한 분위기가 더욱 부각되었다.



* Olympus OM-1 + G.Zuiko 50mm f1.4 + Kodak NC400 / 2012년 9월, 경기도 수원

* ASA400에 해당하는 고감도 필름을 사진기 ASA125에 맞춰 저감도로 촬영, 슬라이드 필름이 없을 때 간혹 시도하는 방법인데 비현실적인 색채와 수채화 같은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 Olympus OM-1 + G.Zuiko 50mm f1.4 + AGFA Vista 200 / 2011년 6월, 서울 신림동

* 주광하에서 조리개 최대 개방(f1.4)상황에서도 주이코 렌즈의 선예도가 매우 뛰어나다.



* Olympus OM-1 + G.Zuiko 50mm f1.4 + AGFA Vista 200 / 2012년 2월, 용산 전쟁기념관

* 어렸을 때 나는 아버지께서 자꾸만 나를 사진찍으려고 하실 때마다 싫다고 도망다녔다. 이제 내가 내 아이들을 찍으려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나와 달리 이 사진기로 사진찍히는 것을 좋아한다. 처음에는 디카인줄 알고 사진을 찍자마자 냉큼 달려와 보여달라고 했었는데 '이건 필름사진기란 건데... 나중에 현상하고 인화하면 사진이 되서 돌아와...' 설명해주면 며칠이고 그 사진을 기대하며 가슴졸이며 기다린다. 그리고 결과물을 보면서 그렇게 즐거워할 수가 없다.



* Olympus OM-1 + G.Zuiko 50mm f1.4 + Kodak NC400 / 2012년 6월, 인천 부개동

* 이 어린 딸아이가 이제 6살이 되어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ASA400의 고감도 필름을 대낮에 촬영했더니 입상성이 많이 거칠다. 그러나 실내에서의 촬영은 훨씬 안정된 화상을 보인다.



* Olympus OM-1 + G.Zuiko 50mm f1.4 + Fujifilm Superia 200 / 2012년 8월, 서울 성산동

* 딸아이의 돌사진을 이 사진기로 직접 찍었다. 요즘 아이들 돌사진 얼마나 하나... 비용을 알아보다가 그냥 내가 직접 찍기로 했다. 스튜디오 2시간 빌려서 내가 갖고 있는 DSLR바디 1대, SLR바디 1대, 렌즈 5개, 슬라이드 필름들과 네거티브 필름들 몇 롤 사고... 한 10만원 정도 예산으로 스튜디오에 두 아이를 풀어놓고 가장 자연스러운 장면들을 촬영하여 책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저녁엔 맛있는 식사... 비싼 돈 들여 사진기 장비 잔뜩 바리바리 사놓고 이럴 때 한번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그에 맞는 역할이 아니겠는가...



* Olympus OM-1 + G.Zuiko 50mm f1.4 + Kodak Tmax 400 / 2013년 1월, 배우 최준영씨, 서울 화랑대역

* 거친 흑백을 표현을 좋아하는 편이다. 마치 오랜 여행, 혹은 모험을 다녀온 기분이랄까...!? 컬러로 작업할 때보다 더 많은 기대감이 생긴다. 이거 꽤 중독성이 있다.



* Olympus OM-1 + G.Zuiko 50mm f1.4 + AGFA Vista 200 / 2013년 2월, 서울 대흥동

* 재래시장 한켠을 지날 때 순간순간 한 컷씩 찍어본다. 분명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중인데... 내 어린 시절, 지난 70~80년대의 어느 한 순간의 기억과 중첩되기도 한다. 필름의 결과물로 보는 아련한 느낌은 바로 이런 기억의 재생과 맞물려 더욱 애정을 갖게 한다.



* Olympus OM-1 + G.Zuiko 50mm f1.4 + Kodak Elite Chrome / 2013년 2월, 서울 낙성대

* 역광하에서 아득한 느낌의 파란 하늘, 저렴한 슬라이드 필름이지만 이 엘리트 크롬만의 독특한 표현방식이 아닐까 싶다.



* Olympus OM-1 + G.Zuiko 50mm f1.4 + Kodak 5213/500T / 2013년 1월, 배우 최준영씨, 서울 화랑대 역

* 코닥의 35mm 영화필름을 사진기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롤씩 만들어 파는 곳이 있어 구입해 활영을 해봤다. 텅스텐 조명하에서 사용하는 필름을, 그것도 주광하에서 촬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입상성도 많이 진정되어 있고 색채 표현도 상당히 안정적이라 무척 놀랐다. 영화필름의 위엄(!?)...



이상, 나의 오래된 친구이자 가장 애착이 가는 사진기 Olympus OM-1의 기억들...




타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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